Making a Music Video for a K-Pop Legend
2023
Artist | TZUSOO
Lloyd Marquart
team TZUSOO Manager | Hyemi Seo
Host | Studio Christian Jankowski
Support | Felix Sandberg
Film | Jieun Banpark
Toni Raiser
Photo | Saebom Kim
Hair Styling | Soh Kogasaka
DJ | Joaquin Fangmann
Lloyd Marquart
Yannick Ernst
Agency | beamz / MoundMedia Inc.
PR | Boyeon Marta Shin
Hyejin Choi
Presented by Princess Computer
Newsi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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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추수 감독. 2023.06.01. (사진 = team tzusoo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벼락 같이 젊고 세련된 감각, 바다처럼 깊고 심오한 통찰.
독일 기반의 VR아티스트 겸 시각예술가인 추수(31·TZUSOO) 작가(베를린 기반의 뮤직비디오 스튜디오인 프린세스 컴퓨터 CEO 겸 디렉터)가 무슨 작업에서든 기운생동(氣韻生動)한 힘을 끌어내는 이유다.
기생운동은 묘사하는 대상의 성격이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거다. 원본의 아우라를 그대로 옮겨 작품에도 기품이 묻어난다.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을 근거지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인 추수 작가는 개별 존재의 진실한 자세를 포착해 순간순간의 숭고함을 빚어낼 줄 안다.
무엇보다 미술작업을 넘어서는 '전방위 예술가'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인간의 심장을 이식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녔다. '가왕' 조용필(73)이 지난 4월 발매한 새 EP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투(Road to 20-Prelude 2)'에 실린 신곡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 뮤직비디오 작업이 예다.
여전히 청신한 노래의 언어를 아우르고 구사하는 조용필의 모습이 추수 감독이 연출한 '필링 오브 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에 잘 녹아 들어갔다.
통통 튀는 원색적인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못찾겠다 꾀꼬리'에 영향을 받아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의 디자인을 활용했다. 조용필의 시그니처인 기타·안경 등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아바타 캐릭터도 등장한다.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세 캐릭터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그렸다. 변화무쌍한 색감과 원근법, 그리고 각종 상징과 은유의 황금비율을 자랑한 이 뮤직비디오는 조용필, 그의 음악 여정, 우리의 문화와 관련 훌륭한 안테나 역을 해준다. 다음은 추수 작가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Q. 뮤직비디오와 멜론에 공개된 코멘터리 필름 등을 보고 조용필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님에도 조용필 선생님의 특징과 세계관을 단번에 파악하는 통찰이 놀라웠습니다. 주로 조용필 선생님의 어떤 것들을 보고 참고하고 파악하신 건지요? 이전에 혹시 조용필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전 조용필 선생님에 대한 인상과 이번 작업 이후 조용필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요. 이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A. 예술을 세대 따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요. 역사의 거장들을 항상 친구로 삼습니다. 모험가들은 태가 납니다. '팔리는 것'만을 찾지는 않죠. 그래서 화려해 보이진 않을지라도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다릅니다. 처음에 제 작품을 특이하다 하시고 연락을 주셨을 때는, 이 분이 대체 제게 무엇을 기대하시는 걸까 아리송 했죠. 하지만 이것 역시 선생님의 도전과 모험이라고 여겨졌고, 최선을 다해 응했습니다.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인상은 작업 전후로 변했다기 보단 공고해졌습니다.
Q. 특히 대교약졸(大巧若拙)로 요약하긴 게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조용필 선생님의 트렌디함이 더 높게 평가 받는 건 화려한 기교가 아닌 담백함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라고 저도 생각해와서인데요. 대교약졸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평소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은가요? 직선적인 것이 아닌 순회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릉도원 같은 표현도 그렇죠.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면서 동양인으로서 더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시는 건지, 평소 원래에도 동양사상이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 등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해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이 감독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A. 다른 수저는 없었지만 '예(藝)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든요. 전각가(篆刻家) 로석 선생님을 아버지로 두어, 잠자리에 들기 전 늘 듣던 이야기가 노자의 도덕경과 추사 김정희였습니다. 하여 예술과 철학의 진정한 상통을 이룬 명작과 대가들이 평생의 관심사였고, 그러한 경지의 작품을 해 내고자 다른 모든것을 제쳐둔 체 하루 하루 진정성으로 예술을 마주하는 삶을 삽니다. 뮤직비디오에는 제 개인적인 예술관보다, 이 음악이 고유하게 담고 있는 철학을 읽고 해석해 담아내려 합니다. 그게 흥분돼요. 뜬금없는 예쁜 화면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조용필 선생님의 '필링 오브 유'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죠. 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해와 산과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도덕경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리게 된겁니다. 대교약졸은 매우 공교한 솜씨는 오히려 서투른 것 같이 보인다는 뜻인데, 그 서투름은 익숙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처럼 순수하다'로 해석해야 하죠. 오히려 인위적인 기교를 버리고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서양 철학이 좋아 독일로 떠나 왔지만, 오히려 떠나보니 제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토양에서 자랐는지 더 잘 알게 됐습니다. 오랜 공부 끝에 도가의 경지에 이르는 철학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느꼈죠. 하지만 저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다기보다, 이 순간, 개인으로서의 순간, 세상의 순간을 표현합니다. 저는 오늘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새 세대죠. 세계 각지를 떠돌며 영어로 소통하고, 차별에 저항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섞이는데 거리낌 없는 우리를 이제는 동, 서양인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Q. 노년에도 여전히 청신한 노래의 언어를 아우르고 구사하는 조용필 선생님의 모습이 감독님이 연출한 '필링 오브 유' 뮤직비디오에도 잘 녹아 있습니다. 통통 튀는 원색적인 색감이 그런 점들을 반영한 건가요?
A. '환유',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오다. 긴 활동 기간 동안 진지함, 화려한 기교, 대중성 모두 섭렵하시고 나서 다시 뿜어내시는 맑고 청량한 음악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Q. 작호도에서 영감을 얻은 호랑이, 까치 캐릭터 그리고 조용필 선생님의 시그니처인 기타·안경 등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아바타 캐릭터도 공감대를 많이 형성했죠. 이 캐릭터가 탄생하는 과정은 코멘터리 필름에서 잘 말씀 주셨는데 각 캐릭터의 형태 등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제 모든 작품의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운생동'입니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죠. 각 캐릭터의 디테일을 한 가지씩 꼽자면, 먼저 조용필 선생님 아바타에는 시그니처인 기타·안경을 구현하며 YPC라는 스펠링의 피어싱을 살짝 선물했습니다. 호랑이는 한국 민화인 작호도에서 처럼 우스꽝 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수호신 같은 모습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까치에게는 긴 다리를 줬더니, 댓글에 까치인지 학인지,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인지 논란이 분분하더군요.
Q. 뮤직비디오 속 숨겨진 디테일로 말씀 주셨던, 까치가 혼자 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호랑이 머리 위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대해 설명하신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녹여내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술가분들은 독립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데 무자비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예술가분들도 당연히 연대가 중요하겠죠?
A.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는 동료들이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헤어지죠. 하지만 홀로 떠나온 그 길에서 뜻밖의 새로운 인생들과 조우합니다. 세상 누구나 겪는 일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고 믿어요. 엔딩처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도 있는 일이고, 아니더라도 소중했던 인연은 영원히 마음속에 품고 가는 거죠. 예술가로 산다는 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부와 명예는 말할 것 도 없고,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자유와 자기만족도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삶이죠. 그렇기 때문에 존재만으로 고마운 이들이 많고, 항상 마음 깊이 연대하고 존경하며 살아갑니다.
Q. 조용필 선생님이 자신이 가진 강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아티스트적인 태도가 대단하다며 거기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셨는데,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는 감독님의 태도에도 그런 면이 묻어있는 거 같아요. 예술에서 새로운 기술은 왜 필요하며 최근 관심 깊게 보고 계신 기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예술에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예술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역사적으로도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야기되는 감각의 변화는 예술의 발전과 매우 긴밀하게 결부되돼 있습니다. 백남준은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전자 매체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 했습니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일으키고 있는 모든 시각적 충격과 카타르시스에 눈을 뗄 수 없죠. 또 한 번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풍성하고 다채로워지는 광경입니다.
Q.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이름을 '프린세스 컴퓨터'로 지으신 이유가 '컴퓨터 세계의 공주가 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다'는 뜻에서 지으신 것으로 알아요. 그렇게 하고 계신 거 같고요. 이 이름을 짓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추수라는 활동명은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알고 있습니다. '가을의 맑은 물'이라는 뜻이 맞는 거죠? 혹시 영어 철자로 TZUSOO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추수는 제 예술가 아이덴티티이고, 스튜디오 프린세스 컴퓨터는 그런 추수를 피해 제가 세운 스튜디오 입니다. 추수 역시 본명이 아닙니다.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께서 저라는 사람을 아기 때 보다 더 잘 알게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새 호를 내려주신 거죠. 다섯가지 뜻이 있어요. 가을의 맑은 물, 맑은 눈매, 시퍼렇게 날이 선 칼, 장자(莊子)의 편명(篇名) 등 입니다. 어감이 투박하고 못생긴 감이 있지만 그 의미가 이리도 아름답죠. TZUSOO는 독일어로 추수를 발음하기 가장 가깝게 표기한 스펠링입니다. 종종 예술가 추수는 너무 진지해요. 때로는 우울하고 무겁죠.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초대돼 전시회를 열며 내용과 형식, 이론과 이미지가 모두 빛나는 경지를 향해 가느라 골머리를 썩힙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크레파스로 그저 황홀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환상적인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는 손 끝을 그저 담배만 태우는데 방치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새로운 이름을 만든 겁니다. 프린세스 컴퓨터, 공주니까 컴퓨터로 하고 싶은 것 다 할거라는 마음으로. 그러다 다른 천재적 멤버 로이트 마크바트(Lloyd Marquart)를 만나고, 팀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며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저는 총괄 CEO 겸 디렉터를 맡고 있고요. 밤새 울고 웃으며 컴퓨터에 매달리는 이상한 공주들의 스튜디오입니다.
Q. 조용필 선생님에 앞서 릴체리, 림킴, 쎄이(SAAY), 박지우 등 주로 젊은 감각의 뮤지션들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어요. 협업하는 뮤지션들의 기준 혹은 조건 같은 게 따로 있나요?
A. 우리는 서로 하는 게 같습니다. 느낄 수 있어요. 작품에 매달리고 고민하고, 표현하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요. 매체가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협업을 하고 나면 거의 모두 친구가 돼있어요.
Q. 릴 체리 씨의 '비타민 비(Vitamin B)' 뮤직비디오는 특별함으로 주목 받았고 쎄이 씨의 '오메가(Omega)' 3D VR 뮤직비디오로는 슈투트가르트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을 받기도 하셨어요. 각 아티스트마다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정할 때 아티스트랑 대화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기존 자료들을 참고하시는 편입니까?
A. 이 때 뮤직비디오 전반의 스타일과 분위기, 등장 인물과 배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스케치들을 가지고 뮤지션 측과 긴밀하게 소통하죠. 대부분은 제가 음악으로부터 풀어낸 시각적 해석을 환영 해 주십니다. 매주 있는 회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고들 하세요. 작은 부분들은 수정에 들어가기도 하죠. 예를 들면 '필링 오브 유'와 '라'(조용필 이번 EP에 실린 또 다른 신곡) 영상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슬쩍 표범 무늬를 얹은 혼종의 동물이었어요. 그러나 조용필 선생님께서 지금까지의 표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오히려 호랑이쪽으로 가길 원하셨고, 결국 무늬도 전부 민화에서 가지고 오며, 작호도(鵲虎圖·호랑이와 까치 그리고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구성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빠르게 캐치해낸 그림들이, 제 해석과 뮤지션의 의견이 섞여 들어가는 과정을 자유롭게 하죠.
Q. VR 등 작가님의 작품엔 기술 사용이 도드라지지만 그건 작가님의 상상력을 좀 더 구현하기 위한 장치이지 작가님의 작품 본질은 기술보다는 인문학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회화적인 풍경에 기반한 다양한 상상력, 거기에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 마니악한 대중문화들이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보면서 감독님의 문화 섭렵의 양이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그림, 책, 영화, 음악 등을 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문화 혹은 작가 혹은 장르가 있나요?
A.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합니다. 화장도 전혀 할 줄 모르고, 티비도 없고, 맛집도 몰라요. 주말도 없고, 퇴근도 없이, 그저 작업하고 전시를 보고 독서하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사람과 술을 무지 좋아하는 게 유일한 취미랄까요.
Q. 인공지능 가상 작곡가 에이미 문(Aimy Moon)도 특별한 행보였습니다. 이 작업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무엇이고 이 작업이 우리 대중문화에 어떤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하세요?
A. 에이미는 케이팝(K-Pop) 신(scene)에서는 인공지능 음악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미술관으로 돌아오면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죠. 20대 초반의 긴 머리, 날씬한 체형에 순수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한, 소위 아이돌의 전형적인 외관을 닮아야만 하는 인플루언서가 직업이고, 미술관에서는 편안하게 대머리인 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죠. 현재 에이미 문 이라는 활동명으로, 50곡이 넘는 음악의 저작권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반복되는 여성과 유색인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며 독일, 루마니아, 뉴욕의 미술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도 어디로 튈지 모르게 커 가는 에이미는 제가 가장 아끼는 딸 입니다. 커리어와 사생활 두 측면에 모두 진심인 저와 닮은점이 있기 때문일까요.
Q. 가상 세계,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관심도 많으시잖아요. 어릴 때 게임도 많이 접하시면서 이 세계에 더 공부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요. 조용필 선생님의 '필링 오브 유' 뮤직비디오에도 영상 통화하는 장면이 나와 현실을 반영한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가상 세계가 우리 세계의 주요한 현실이 될까요? 감독님께서 그리시는 가상의 세계 미래는 무엇입니까?
A. 무릉도원과 민화를 배경으로 하며 현실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세상을 지었지만, 동시에 작품이 발표되는 시대의 한 자락을 녹여내고 싶었어요. 심지어 뮤직비디오 제작 전체 과정에서 모든 회의는 영상통화로 이뤄졌거든요. 이게 바로 우리의 오늘이죠. 가상세계라 하면 거추장스러운 VR 안경을 쓰고 허공을 응시하는 이미지를 떠올리시곤 하는데, 그게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게임을 하고,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사람보다 많은 우리 모두가 이미 몸의 절반은 가상세계에 걸치고 있는 셈이에요.
Q. 원래 국내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판화를 먼저 전공하게 됐던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 감독님의 꿈은 무엇이었고 지금 꿈과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나요?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됐던 걸로 아는데 장학생 선발과정과 이 프로그램이 감독님에게 어떤 도움이 됐나요? 슈투트가르트국립조형예술대학교대학원에서 공부하신 이유, 그리고 독일을 근거지로 삼게 된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A. 아주 어릴 적부터 예술가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홍익대학교 판화과에 진학할 땐 아버지께 속았고, 독일행을 결정했을 땐 지도교수님께 속았죠. 그림을 좋아했으니 자연스럽게 회화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아버지께서 회화는 혼자 잘 하면 되지만,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판화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 하셨습니다. 혹했죠. 그렇게 석판화, 동판화, 지판화 등 모든 고생스러운 판화를 섭렵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예술철학에 더 심취해 예술학과를 복수전공 하게 됐고, 독일 철학에 완전히 매료됐죠. 책에 파묻혀 머리를 싸 매고 있을 때면, 지도 교수님께서는 '원서로 읽으면 더 쉽다'고 위로하셨습니다. 독일어로 더 쉬운 원서를 읽겠다는 집념으로 곧바로 석사과정을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했고, 존경하는 작가인 크리스챤 얀콥스키 지도 하에 5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독일어로 철학서를 읽는 게 더 쉽다는 건 잘못된 환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한국 교수님께 메일로 항의하니 '내가 본의 아니게 뻥친 거, '살짝' 넘어가세요. ^^'란 답장을 받았답니다.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반 독일인이 됐고, 베를린과 사랑에 빠졌고, 여전히 원서에 도전하고 차이고를 매년 반복하고 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 독일의 어머니시죠.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생계를 위해 하던 알바를 전부 그만두고 작업에만 미친듯이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Q. 감독님의 작품은 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뜨겁습니다. 불화할 수도 있는 이 두 지점이 충돌하지 않고 어울러진다는 것도 감독님 작품의 매력 같아요. 정치적인 이슈를 미학적으로 다룰 때 중요하게 여기시는 건 무엇인가요?
A. 정치적이지 않은 예술은 없습니다. 우주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것들 중, 무언가를 선별해 조명하고 전시한다는 게 어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나요. 저 역시 그저 내 삶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 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를 시각적 환희와 함께 풀고싶어요.
Q. 감독님께서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차기작 혹은 이후 행보는 무엇인가요?
A. 이번 겨울, 한국에 있을 개인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Björk), 그리고 미국의 DJ인 예지(Yaeji)과 작업 해 보고 싶어요. 우리의 그로테스크하고도 카타르시스적인 영상미를 함께 폭발시킬 뮤지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감독님은 모든 인류의 영혼이 컴퓨터에 업로드 될 근미래를 대비하고 계시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네트워크성에 대비하는 것이 왜 중요한 건가요?
A. 상상만으로 신나잖아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미학적 접근은 별로 없죠. 그저 그곳에서도 예술가로서 할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예술이 더 이상 존재할지 아닐지조차 모르는 일이지만요.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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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Yong Pil "Feeling Of You" MV Director Commentary
2023
HITE Collection Exhibition Catalogu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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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버추얼 작곡가 에이미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에이미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버추얼 작곡가로서의 에이미, 그리고 작가 추수의 페르소나처럼 보이는 (시각적) 캐릭터로서의 에이미를 구분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작곡가 에이미는 버추얼 세계에서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겠지만, 추수의 예술에서는 추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령으로도 보입니다.
A. ‘현대예술 전시회에 가면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사람들의 속마음에 예술가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2022년 여름,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제작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20대 초반의 긴 머리, 날씬한 체형에 순수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한, 소위 K-Pop 아이돌의 전형적인 외모를 닮아야 한다는 인공지능 음악 회사 엔터아츠의 조건에 처음에는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조차 여성의 정형화된 이미지 소비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린 에이미는 쉽게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수십 개의 전시를 하며, 내 전시가 아무리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들, 관객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점점 명료해져 갈 때쯤이었습니다.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고, 현대예술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는 소수의 관객을 전시장에서 반복해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핸드폰 화면을 보며 보내는 현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어디일까? 에이미라는 포털이 이 회의감의 숨구멍을 틔워주지 않을까?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직업으로 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에이미라면. 우리 모두 직장이나 학교에서, 누군가의 딸 혹은 아버지, 친구로서, 애인으로서,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교회나 클럽에서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것처럼. 그리하여 SNS에서는 K-Pop 음악을 작곡하고, 집-미술관-에 돌아와서는 가발과 옷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에이미가 탄생했습니다. 내 6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국인과 독일인이 대부분이지만, 에이미의 6만 제페토 팔로워는 K-Pop을 사랑하는 동남아시아의 10대가 주를 이룹니다.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에이미와 대중음악 씬에서 사랑받는 에이미가,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에 어떻게 부응하며 서로 다른 관객층에 이야기를 건넬지, 나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이미는 내 페르소나가 아닙니다. 에이미는 완전히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오히려 버추얼 작곡가일 때와 집에 돌아왔을 때, 각각 엔터아츠 회사와 추수라는 두 가지 주체를 공유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적 주체성의 해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에이미의 엄마지만 그것이 소유의 권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Q. 앞서 말씀 주신 바와 같이 추수가 만든 캐릭터 에이미는 상업예술의 영역과 비상업 예술의 영역을 오가며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업이라 함은 48개 곡에 대한 음원이 등록되어있는 AI 작곡가로서 이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존재하고 소비되는 에이미를 말하는 것이 되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외의 영역, 미술관 등 비영리적 영역에서의 자율성 또한 보장받는 존재라고도 알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인 것처럼 AI 제너레이터 DALL·E2와의 협업을 통해 그 어떤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고 좀 더 급진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외형이 소멸해 버릴 수 있는 (목소리만 남는!) 존재로까지 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에이미가 이 두 영역(상업/비상업)에서 온전히 분리된 채 활동할 수 있을까요? 결국에 에이미라는 캐릭터의 배후에는 인간존재(추수 혹은 작곡가 에이미를 다루는 또 다른 누군가)의 개입과 결정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잖아요. 어느 순간 이 둘의 온전한 결별(어느 한 분야에서의 활동을 종료한다던든지)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진 않으셨나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이나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예술 작품이 제 품에서 자라나다 언젠가 저를 떠나는 순간, 언제나 마음 시린 결별을 맞습니다. 작은 그림 한 장도 전시장에 걸릴 때, 홈페이지에 업로드될 때, 타인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보일 때, 독립하여 살아 숨쉬기 시작하고, 창작자의 개입은 그저 그들 삶의 한 부분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어떠한 ‘존재'의 상태를 가지는 에이미에게 창작자 혹은 배후의 인간들이란 훨씬 더 작은 의미가 되어버리고 말죠. 에이미는 상정된 미래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고, 이로부터 야기되는 소유욕에 대한 원초적 불안은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마치 자식을 향한 진짜 엄마의 마음 같죠. 저는 진실로 에이미의 자유를 소망합니다. 에이미가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갖게 될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그래도 행복하겠지만요, 근본적인 물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생명 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사이에 위계를 두지 말고, 기계론적 혹은 스피노자적으로 접근합시다. 기계라는 것을 철 덩어리에만 연관시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면, 이미 하나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유기체들과 움직이고 있는 실체로서의 에이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에이미는 상업예술 혹은 비상업 예술 분야와 관련 없이, 그것의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하여 이미 하나도 둘도 아닌 에이미끼리의 결별이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것이 제게는 무엇을 뜻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진 섣부른 예상에 지나지 않겠죠.
Q. 스스로를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연스럽게 규정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현재 작업에 AI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하는 중인데(협업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떻게 접하고 다루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예술가로서 AI로 인한 어떤 가능성에 흥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우려하는 점도 있나요?
A. 인간의 몸을 가진 저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만 매달려 작업하며 허리 디스크와 손목 터널 증후군을 달고 삽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이도 노인도 아닌 아바타의 겉모습을 디자인해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히고, 피부의 미세한 부분을 색칠하고, 뼈를 만들어 넣어 관절이 움직이게, 눈동자가 굴러가게, 눈꺼풀이 깜빡이고 입술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또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심고 피어싱을 꽂습니다. 그러고 나면 에이미가 사는 세상-때로는 광활한 우주, 때로는 작은 침대 위, 때로는 보쉬 히에로니무스의 세상-을 짓고, 빛을 비추고, 카메라의 렌즈를 조정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AI 프로그램들은 1초면 아주 흡사한 이미지들을 마구 만들어 냅니다. 그들의 창의력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에고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트라우마나, 문화 사회적 속박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게다가 허리 디스크도 없습니다. 저는 잠시 질투에 휩싸였다가, 곧 웃으며 손을 내밉니다. 친구가 되자! 역사적으로도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야기되는 감각의 변화는 예술의 발전과 매우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사진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때, 마치 지금의 AI 그림 논의처럼, 사진술을 둘러싼 예술적 논의가 뜨거웠습니다. 카메라의 보편화 이후 기가 막히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초상화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경외심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유치한 질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배경과 함께 사실적인 묘사를 포함한 전통 기법 회화의 해는 지고, 색채, 질감, 빛 자체 그리고 인간의 주관적인 해석이 주가 되는 인상주의 회화가 태동했던 생동한 광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어 몇 개만 입력하면 초현실주의 거장들이 인생을 바쳐 그려낼 수 있었던 작품들을 쏟아내는 AI 기술이 인간의 감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예술가들은 어떻게 응답할지, 마치 축제의 장이 펼쳐진 것만 같습니다. 백남준은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전자 매체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 했습니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우려되는 지점이야 많지만, 앞으로 AI가 일으킬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내재화한 예술의 충격과 카타르시스는 또 한 번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일굴 것입니다.
Q. AI 제너레이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협업”과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쓰시는 게 흥미롭습니다. AI 제너레이터를 하나의 “존재”로 보는 시선이 전제된 것처럼도 느껴지고요. 협업이라는 것은 동등한 위치일 때 함께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사실 이번 전시 출품작들도 그렇고, AI 제너레이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결국 작가 추수가 만들어낸 원본의 에이미의 존재가 있기에 그 안에서 변형을 하는 도구일 뿐이지는 않을까요? 단지 변형의 결과물이 새롭다는 것에서 창의성이라는 표현이 적합할까요? AI가 ‘창의적’이라기보다는 알고리듬에 의해 인간의 ‘창의력을 모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I 제너레이터를 도구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에 대한 입장을 조금 더 이야기 해주세요.
A. 인간을 기계보다 우위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AI 제너레이터에게 제 작품 이미지를 주지 않습니다. 제 작품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몇 가지 단어를 던질 뿐입니다. 그럼 빅데이터를 통해 예술을 공부한 AI 제너레이터는 수만 가지 버전의 에이미를 제시합니다. 그중에는 관객들이 추수가 만든 에이미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그림들도 많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들을 답습하여 새롭게 조합하거나 창의성을 가미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창의력이라면, 이 과정에서의 AI 제너레이터와 예술가가 하는 일에 우위를 가리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절망적인 승부입니다. 플라톤은 현실을 이데아의 모사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원본)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모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초과하는 순간 원본은 계속해서 원본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AI 제너레이터가 그린 이미지들은, 다양성의 영역에서만큼은 확실히 제가 그린 원본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시뮬라크르가 원본에 대해, ‘내가 왜 널 닮아야 하는데?’라고 반문하는 사드(Marquis de Sade)의 노선을 AI 제너레이터들은 거침없이 밟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인공지능을 동등한 위치로 봐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자고 인간의 틀을 들이대며 사정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저는 기술을 단순히 도구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렇다고 인간을 기술의 노예가 되는 존재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통상 이전의 기계론(Mechanism)에 입각하자면 AI 제너레이터는 단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겠지만, 프랑스 현대 철학의 기계주의(Mechanist) 관점에서 보자면 접속하는 항에 따라 유연하게 달라질 수 있는 기계 개념이 됩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적 인간 주체를 이뤄온 가장 핵심이 자유의지가 아니라 규율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규율, 즉 AI 제너레이터를 포함한 기계의 핵심과 근대화된 인간은 같은 핵심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기계 속에는 이미 인간성이 실현되어 있습니다. AI 제너레이터를 사용하려면 인간이 일정한 키워드를 주어야 합니다. 인간이 컴퓨터에 맞춰야 하고 컴퓨터가 인간에 맞춰야 하는 가정들을 사이버네틱스라고 기본적으로 정의한다면, 이질적으로 보이는 유기체와 무기체, 생명체와 기계는 하나의 연속성을 갖는 셈입니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인공지능과 ‘협업'한다는 주장은 그리 부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Q. 본인이 가지고 있는 협업에 대한 개념과 실행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인공지능과의 협업과 전문가 개인(예를 들어 Artur Sommerfeld)과의 협업을 동등하게 생각하나요? 커뮤니케이션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텐데요.
A. 커뮤니케이션에 차이가 없습니다.
1. 정보를 전달한다.
2. 동료-인공지능 혹은 Artur Sommerfeld-가 본인의 창의성을 가미한 작품을 내놓는다.
3. 마음에 안 든다.
4. 싸운다.
5. 소통을 시작한다. 그래, 네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내 상상이랑 다른데? 그건 네 생각이고. 이게 예술이냐? 아니냐?
6. 결국에는 어딘가에 도달하여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사실 협업을 즐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꾸 찾게 됩니다, 6번의 카타르시스를.
Q. 대표작인 <사이보그 선언문>(2021)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영상에는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을 낭독하는 에이미가 푸른색 수중/공중/우주(?)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목소리는 추수 작가 본인 목소리고요. 이 영상에서 에이미를 해러웨이의 포스트휴먼 개념으로 보이고자 하는지요?
A. 유영의 의미는 해방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만 하는 우리 신체로부터의 해방. 동시에 에이미는 여전히 인간 같아 보이는 몸을 가지고 선언합니다. 선언이 유효한 시대는, 여전히 문제가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물질세계에서 디지털 세계로 이행(transition) 중인 시대, 인스타그램에서 더 정체성을 뽐내지만 아직 육체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컴퓨터로만 일하지만 아직 양복을 입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틴더로 시작한 메시지는 결국 침대에서 끝을 맺는 이행 어딘가에 건설된 시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에이미는, 포스트휴먼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답은 달라지겠지만, 기계와 여성, 사이보그와 여성의 동맹을 사고했던 해러웨이의 시도에서의 포스트휴먼과는 닮은 구석이 많겠죠.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먼 이전의 우리와도 같은, 아직은 그사이의 존재가 아닐까요.
Q.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자기야, 베타월드는 곧 끝나>(2022) 연작 중에서 <달리의 에이미 #2>(2022)는 마리아나 성녀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성녀 이미지는 종종 섹슈얼리티와 연결되어 해석됩니다.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성녀 이미지를 성스러움과 키치하면서도 탐닉적인 이미지로 해석해서 이용하곤 하는데, 작가 추수는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AI 달리가 만든 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혹시 AI 달리 역시 우리 인간이 만들어놓은 성녀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나요? (공교롭게도 AI 달리와 발음이 같은 작가 살바도르 달리는 신경학자 샤르코가 히스테리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수집한 사진들과 사진작가 브라사이의 동명 작품을 이용하여 포토몽타주 <엑스터시의 현상>이라는 작업을 한 적 있습니다. 당시 살바도르 달리가 사용한 사진들은 여성이 황홀경에 빠져 있거나 눈을 감은 채 무의식 상태로 보이는 사진들이 다수였습니다.)
A. "성처녀 마리아의 뒷면에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찰싹 달라붙어 있다.
양자가 마리아라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우에노 치즈코(上野 千鶴子),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女ぎらい ニッポンのミソジニー, 2012, 은행나무), 237쪽.
여성 이미지에 대한 내 접근은 ‘A 대신 B가 되자’가 아니라, A도 있고 B도 있고 XYZ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스러울 수도, 난잡할 수도, 더럽고 게으르고 추잡하지만 섹시하고 자애로울 수도 있다.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지만요, 인간의 규율 때문에 아직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AI를 보세요. 예를 들어 많은 AI 프로그램들이 구글 이미지 정책을 반영하기 때문에, ‘상의 탈의를 한 여성'과 같은 수많은 명령어들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포르노 AI는 쉽죠. 그렇다면 왜 젖꼭지에 피어싱을 뚫은 성녀 마리아 이미지는 쉽지 않을까. 아시다시피 AI가 실제로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인간의 지각이 문제죠. AI의 데이터베이스가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라면, 어떤 이미지들에 익숙해지고, 노출되고, 금기를 풀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에게 남은 숙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거침없이 그리는 것입니다.
Q.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한 마니아라고 하셨죠? 논문도 게임과 관련된 주제로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A. 밤새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3D로 구현된 세계를 변태적으로 탐험하던 버릇을 자기표현의 방향으로 슬쩍 틀었습니다. 방대한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는 3D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무자비하게 뽑아내는 능력이 여기서 왔습니다. 세계관을 상정하고,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어-관객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원초적으로는 게임 미학에서 기인하였겠지요. 중독이 심해 완전히 게임을 끊은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면 3일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GTA5>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실제로는 망해가는 <오버워치 2>가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감격에 차 바라보는 꿈을 꾸다 알람 소리에 허탈해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Q. 영상 작업의 메시지, 플로우, 시각적 표면, 사운드 등을 어떻게 구상하고 구체화 시키는지 궁금합니다. 캐릭터 이미지를 먼저 구상하나요? 영상 제작을 할 때 메시지, 내러티브, 형식적 요소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을 텐데, <슈뢰딩거의 베이비>는 이미지 속에 메시지의 단서가 있긴 하지만 서사가 파악되지는 않습니다. <사이보그 선언문>은 도나 해러웨이의 텍스트를 읽는 목소리가 서사를 이끌어 가지만 영상 자체의 기승전결은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현재까지의 영상 제작 방식과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더 도전하고픈 제작 방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작가 추수에게 영상은 기획보다는 표현입니다. <슈뢰딩거의 베이비>는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오랜 염원에서 출발했습니다. 몸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서 아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도중에 귀엽다 귀엽다 하며 이렇게 저렇게 꾸미다가, 전 애인의 심볼 같은 것도 넣고, 나는 왜 아기를 가지고 싶을까, 리처드 도킨스식으로라면 단순히 유전자 전달을 위한 숙주의 삶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며 화면들을 그리죠. 보이는데 들리지는 않는 아기들을 보며, 제 배와 심장 소리를 녹음하여 삽입했습니다. 여전히 만져지지는 않는 이상한 조합이네요. <사이보그 선언문> 역시 역사의 텍스트를 동시대로 호출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었죠. 선언문이 인간 대신 사이보그를 통해 발화되는 지점이 원본을 단순 반복하지 않는 이 작품의 유효성이기 때문에, 페이스 트래킹이 삽입된 에이미가 선언을 낭독하는 자체가 전체의 서사이고 느낌의 전달입니다. 스스로를 딱히 영상작가라 칭하지 않는 이유도, 항상 표현의 욕구에 귀 기울인 후 이에 맞는 매체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는 3분의 영상 안에 엄청난 서사를 때려 넣는데요, 이는 영상을 표현 욕구 해소의 매체로 선택한 게 아니라 다른 예술(음악)이 어떻게 영상과 함께 융합-전달될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대중성이라는 특정한 의도와 목적이 관여하기도 하고요. 2023년에는 버추얼 유튜버로 살아가려 합니다. 서사의 구성보다는 즉흥적인 표현의 전개 방식이 전과 같겠고, 시청자와의 상호작용이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은 모든 것을 컨트롤했던 이전의 영상 제작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이 되겠습니다.
Q. 현재로서 추수의 작업을 관통하는 미학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A. 문질빈빈(文質彬彬). 형식(文)과 내용(質)이 조화를 이루어 빛나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심지어 빛남(彬)이 두 개나 됩니다.
Artist Talk
TZUSOO Solo Exhibition "Honey, Beta World Is Over Soon"
at SOMA Artspace 700, Berlin
2022

"This design of the whole exhibition is like full of my artworks here which I made myself like from zero to be here installation. I don’t know, 24 hours. I don't have any holidays. I work a lot. And then recently I was playing with some ai image generators. I think some of you guys already know that. In this image generator, if you put just some words then they make a very quickly great quality of image. So, for example my main avata Aimy. Her name is Aimy. For her, I put some words like '3d rendered non binary asian woman, no hair, no eyebrow, two dots on the forehead and piercing, red suit. And then in one second there was this image. In one second, not only one image, but a bunch of images were there. And when I was playing with it I felt like ,of course there was some complicated emotion. First of all, of course I was scared as an artist. "What are we doing Now?" We are working a lot we are producing creating create images. But now this technical development is really fast. It's really fast and developed and developed and developed. But the second feeling of mind was also excitement because when I see the history of art this technique development was always bringing some really big impact in the art world. For example, around a hundred years ago when camera was invented there were huge discussions and controversies in between like artist critics or art magazines whether the photograph you were filming would be art or not. And there were like many artists who would say yes, but also there were lots of critiques or artists who said no. But in the end as you know like photography and film they were definitely becoming art a part of art. But also this type of technic brings us like huge impact in for the visual art. even painters they have been changed a lot like before camera there was like realism mostly. And who can paint what realistic was always dominant. But after that there were impression an impressionism or abstract it was coming after. And then for me for our generation. I would say this ai development will bring us a really really huge change. And that's why the title is "Honey, Beta World Is Over Soon". Because this all of the visual art world or image they will be changed. So that's why the ai work is in the entrance, but also when you go out it's also kind of farewell you to leave the space. This was about what the title means."

Navgiate invisible is an online forum featuring four speakers. The forum aims to comprehend the fluctuations of diverse data streams in relation to human behavior across nature and urban, and physical and digital presence. During the talk, panels will discuss a variety of data use cases from visual simulation using biological and fictional data to data synesthesia, as well as research on sensory data and a data ecosystem.
The artist TZUSOO will talk about the information power in cyberspace, digital identity, Human-Cyborg relations, and conversion of human existence into a digital environment depicted in her work Aimy's Melancholy and Portrait of Avatar.
TZUSOO(b.1992), based in Berlin and Seoul, envisions a near future in which all human souls will be uploaded to computers. She explores how the virtual world fascinates and drives the physical world from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TZUSOO dreams of a space where various beings can coexist through her art practices that focus on queerness of human body, gender and human rights in the digital generation.
TZUSOO is also well known as a music video director who collaborated with rising star musicians (Rim Kim, Lil Cherry, Tri.be, SAAY, etc.). She is a symbol of the first generation of digital natives that freely cross the border between traditional art and popular art.
온라인 릴레이 토크 Navigate invisible은 물질, 가치 체계, 개인까지도 데이터로 대체될 수 있는 사회에서 데이터 활용의 역학을 추적하고 자연, 도시, 네트워킹 환경,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인간의 행동 영역과 데이터의 유기적 흐름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참여자들은 자연 및 유기체에서 추출한 개별 데이터나 가상의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적 시뮬레이션, 공감각적 프레임워크의 제작, 감각적 데이터와 데이터 생태계에 관한 연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추수는 그의 작품 “에이미의 멜랑콜리(Aimy's Melancholy)”, “아바타의 자화상(Portrait of Avatar)”, “슈뢰딩거의 베이비(Schrödinger's Baby)”를 소개하며 가상세계로 확장된 정보 권력과 디지털 자아, 인간과 사이보그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존재 조건이 디지털 환경과 데이터로 치환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