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angely optimistic 2025
“도와줘!”
화면에 뜬 서로를 보고 로이드와 나는 이마를 짚고 낄낄낄낄 웃기 시작한다. 모니터의 빛이 비추는 새벽 세시의 얼굴.
“너무 익숙한 장면인데.”
이번엔 작업은 잠은 자며 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익숙한 화면공유, 익숙한 ‘뭐가 문제지?’ 타임, 익숙한 블렌더 오류 뜯어보기. 로이드는 아! 이거 꺼 봤어, 저거 켜 봤어 하며 내 머리 쥐어뜯기를 잠 재워 준다. 익숙하게.
“요 와쌉~”
갑자기 라면을 먹으며 등장한 지온을 보며 또 낄낄낄낄. 왜 너네 둘만 미팅하냐. 그럼 너도 껴라. 싫어, 보기만 할래.
새벽 서버가 본 게임인 건 어쩔 수 없다.
11.6
지옥같은 카운트다운
Countdown from hell
9.6
언제나 성심으로 좋은 작품을 찾아다니고 성심으로 작업하겠습니다.
I will always seek out great works witdh sincerity, and dedicate myself wholeheartedly to my own practice.
2.6
일기는 그냥 가끔다는 내 라이프 라이브의 코멘트고,
진짜 글은 네게 다 썼었네
31.5
길고 긴 싸움이 재미있다.
물고 늘어지길 좋아한다.
온 학창시절을 통틀어 오래달리기에서 나를 앞지른 건 이근하 한 명 뿐이었다.
지겹도록 야구를 봤다. 축구는 시작할라 치면 끝나버렸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의 상태로 들어가면, 승부는 관건이 아니게 된다.
Long, drawn-out fights are fun.
I like to cling on and never let go.
Throughout all my school years, Lee Geun-ha was the only one who ever outran me in long-distance running.
I watched baseball obsessively. Soccer always ends just as it was getting started.
Once I enter the ‘let’s see who wins’ mode, it’s no longer about winning or losing.
29.5
열어보기 싫은 수 많은 이메일 더미에 초콜릿 무스같이 박혀있는 팬레터
로봇 청소기마냥 벽에 부딛힐 때마다 고개를 훽훽 돌리며 숨막히게 걷다 밟아버린 행복의 압정
내가 버거워 도망간 바에서 만난 생글생글 웃는 나
A pile of emails I have no desire to open. Among them, a fan letter, tucked inside like chocolate mousse.
I bump into walls like a robot vacuum, walking breathless. Step on something, a thumbtack of happiness.
I run away from way much too heavy me, into a bar. And vivid me, unexpectedly, I meet.
21.5
인간은 모두가 절대로 죽기 때문에 살 수 있다.
만일 인간에게 죽을 수 도, 안 죽을 수 도 하는 불확실성이 존재했다면 그 곳은 지옥. 혹은 축적된 폭력성이 자멸의 길을 택했을 것.
죽을 것이기 때문에 허락 된 만큼을 안도하며 산다. 할 수 있는 걸 하고, 망친 하루도 사실 그다지 별 다를건 없다.
통제 아래의 자유가 편안한 법. 흰 캔버스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광활한 공포는 한계가 없다는 연유에서 온다. 매 번 업데이트 되는 블렌더의 새 버전을 설치하고 두 번 클릭하면 덩그러니 생겨나는 1개의 정육면체, 1개의 카메라 그리고 1개의 빛은 우리 유저가 빈 공간이란 블랙홀로 빠져버리지 않게 잡아주는 개발자들의 친절한 장치다.
Humans can live because we all must die.
If death were uncertain—if one could die or not—it would be hell. Or perhaps violence would have built up until it wiped out the population by itself.
Because death is certain, I live as much as I’m allowed with a relief. I do what I can. Even a day that went wrong isn’t so different, in the end.
Comfort lies in freedom under control. The vast fear artists face before a blank canvas comes from the absence of limits. Every time I install a new version of Blender and double click, one cube, one camera and one light always appears. This small setup is the developers’ quiet kindness—a mechanism to keep us from falling into the black hole of emptiness.
24.4
드로잉을 해도 해도 안 나와 골치를 썩는 중이라고, 담배를 물며 턱을 괸다.
점잖게 빼 입은 할아버지가 카페 앞에 손주 넷을 태운 수레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빵을 사러 들어간다. 똑같은 빨간 모자를 쓴 네 명의 볼빵빵이들이 수레에 꼭 맞게 앉아서는 할아버지를 봤다 우리를 봤다 지나가는 개를 보느라 고개를 요리조리 돌린다.
“끅.. 저게 내 불안의 에센스라고. 만약 저게 내 자식들이잖아?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행복해서 작업할 필요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말 거야.”
“..애가 생기면 네 실존적 불화가 덜 해질거라 믿는 건 아니지?”
“..네 말이 맞다.”
월급 없이 사는 대가로 부리는 최고의 사치인 아침 열시의 커피를 홀짝인다.
“오늘의 너는 몇 달 전이랑 완전히 다른데, 그 때의 작업 방식으로 돌아가려 하니까 무의식에서 덜컥거리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땡큐 펠릭스.
4월의 느닷없이 화창한 이맘 때. 음기와 우울에 시달리며 퀭한 눈으로 이 도시를 뜨겠노라 바리바리 짐을 싸던 모두가 맨발로 뛰쳐나와 풀밭에 누워 아이러브 베를린 타투라도 할까나 콧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하는, 이맘 때가 또 왔구만.
"The drawings won’t come out right." I smoke a cigarette, my chin resting on my hand.
A neatly dressed grandfather stops his cargo bike in front of the café. Four chubby cheeked babies, all wearing the same red hat, sit snug in the cart. The old man goes inside to buy some bread. The babies look at him. Then at us curiously. Then twist their necks to follow a passing dog.
"Urggghh... That’s the essence of my anxiety. If those were my babies? I’d be so happy every day, I’d have no reason to make art anymore.”
"...You don’t really believe having a child would make your existential angst any less...do you?"
"...You’re right."
We sip our coffee at 10 a.m. The ultimate luxury bought with a life lived without salary.
"You’re a different person from a few months ago. Trying to return to your old way of working — something in your subconscious is resisting it. That’s how it seems to me."
…Thanks, Felix.
April again. Suddenly, absurdly bright.
The time of year when everyone who once depressively packed their lives into bags, with hollow, sleepless eyes, swearing to leave this shadow-soaked city for good, now runs barefoot into the grass, lies down, hums, thinking they might get an I Love Berlin tattoo.
24. 4
제정신일 때가 가장 제정신이 아닌
sanity is my madness
9.4
I'm so happy with you so I even don't want to fall asleep now. Because I miss you already..
I’m like a super nerdy guy eating a lot of cheeps, looking for a pockemon and got heart attack because I found the rarest pokemon on the street.
24.3
“네 전시보러 오는 사람들만 독특하게 입는 줄 알았는데 우와 여기는 또 다르게 장난 아니다..”
마르텐 공연에 모신 엄마 왈.
“예전엔 아빠 따라 서예계도 다녔잖어.”
“그 사람들은 평범해! 그냥 계량한복 입고 수염 기르고.”
“계량한복 안 평범해 엄마..”
ㅋㅋㅋ
“I was always surprised by how uniquely people dressed at your exhibitions, but wow… people here are wild again..”, said my mom at Maarten’s concert.
“You used to go to the calligraphy scene with dad too, no?”
“Calligraphers are normal! They just wear modern hanbok and have beards.”
“Modern hanbok isn’t normal, Mom…”
lol
22.3
‘설명 없는 현대예술이 가능한가?’에 대한 노트
-인간의 인지가 언어와 그림(도상)을 구분한 지는 얼마 안 됐다. 특히 루터 때.
-동아시아에서는 시서화詩書畵를 떼어놓지 않았다.
-미술사와 도상학은 의도적으로 여성을 퇴출했다.
-다다이스트들은 언어의 권위에 대항하는 전쟁을 치뤘다. 고대 아일랜드 켈트 문헌은 더 멋지다.
-언어는 권위적 성질이 강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도구가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해체를 위해 언어를 사용했으니
-근데 노자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 했다.
-그림은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신비주의나 무속신앙으로 빠지면 안된다. 내 언어와 사고가 자기 역할을 잃지 않도록 영원히 돌보아야지.
바쁘신 하선규 교수님을 어떻게든 귀찮게 하고자 찾아간 Freie Universität에서, 학식을 먹으며.
Notes on ‘Can Contemporary Art Exist Without Explanation?’
-It hasn’t been long since human cognition began distinguishing between language(Text, Sprache) and images(Bilder). Especially during the time of Luther.
-In East Asia,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詩書畵 were never separated.
-Art history and iconography have deliberately excluded women.
-The Dadaists fought a war against the authority of language. Ancient Irish Celtic manuscripts are even far more fascinating.
-Language is inherently authoritative, but depending on how it is used, it becomes a completely different tool.
-Wittgenstein used language to dismantle language.
-Laozi had already said in the 4th century BCE: The Dao that can be spoken is not the eternal Dao 道可道 非常道.
-A painting can never be fully explained.
-However, it must not fall into mysticism or shamanistic belief. I will continuously nurture my language and thought so they can fulfill their own eternal roles in me.
Bothering my ever-busy Prof. Sungyu Ha at the Freie Universität cafeteria, Berlin
5.3
You are fucking hot
Oh, you wanna fuck me hard?
25.2
당연히, 아직 겨울인 것을. 마치 마법사들의 나라처럼 따듯했던 잠시의 1월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밖에 쌓인 눈에 안도했다. 겨울답지 않았던 겨울을 아직 보내지 않았구나.
난 겨울의 사람이다. 춥고 가라앉은 어스름에서 나를 만난다.
13.2
생일선물로 받은 ‘독방’을 가방에 던져넣고 폴란드 포즈난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마르텐과 윱이 사운드 체크를 하는 동안 열어본 책에서 갑자기 김현정 선생님 글이 등장한다. 오우! 지구 반대편에서 선생님의 프라이빗한 공간에 들어 온 비밀스런 기분이군.
“프랑스의 고대 철학사가 피에르 아도에 따르면, 고전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에서 철학은 무엇보다도 특정한 삶의 방식을 지칭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 혹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다 완전한 존재로 다듬어 만들어내기 위해 수행하다는 것이었다. 철학은 그러한 목표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지식의 집합을 의미했다.” ―이우창 ‘감옥, 고독, 그리고 진정한 자아¹ ’ 중
근 몇년은 마음이 노자, 장자에 젖어있다가, 왠지 모르게 플라톤이 그리워지던 중이다. 책장에서 파이드로스를 꺼낸다.
I throw “Solitary”, a birthday gift, into my bag and board the train to Poznań, Poland. While Maarten and Joep are doing a soundcheck, I open the book, and suddenly, a text by Hyunjeung Kim appears. Ow! It feels as if I’ve secretly slipped into her private space from the other side of the world, secretly.
"In the Classical period, according to Pierre Hadot, philosophy―above all else―referred to a specific way of life. One strove to shape oneself into a complete being; philosophy was the collection of skills and knowledge neccessary to achieve this goal." ―’Prison, Solitude, and the True Self¹ ’, Woochang Lee
For years, I was pretty much immersed in Laozi and Zhuangzi. Somehow lately I’ve been missing Plato. I take Phaedrus off the shelf again.
¹ 독방 c.타일러 코번, 스턴버그 프레스, 아트선재센터
Solitary c. Tyler Coburn, Sternberg Press, Art Sonje Conter, 2022
9.2
한병철 피로사회를 닳도록 읽은 게 10년 전인데. 나는 경고를 무시하고 현상해버렸나.
It’s been ten years since I read The Burnout Society by Byung-Chul Han until it was worn out. Did I end up actualizing the very condition he warned against?
7.2
선 넘네? 아닌가?
나는야 줄광대의 후예
눈이 멀어도 줄 위에서 춤을 추는
왕의 남자 천만관객의 민족
31.1
은혜는 가장 오래된 순으로 갚아라
가진 것 중 일부만 보여라
Repay gratitude in the order of the oldest first
Reveal only a fragment of what you have
30.1
“춤 추는데 외할아버지가 옆에 와 한 참 있다 가셨어.”
“오늘 할로윈이잖아. 포털 열렸었나 봐.”
“와, 오늘 진짜 할로윈이네!”
아침 다섯시, 매니는 내게 조금 혼자 있는 게 좋겠다며 꼭 안아주고는 집에 갔다. 그 날 벨카인은 할로윈 파티가 없는 날이었다.
27.1
미래를 말 하면 안되는구나
그걸 돈으로 바꾸는 대가로 숨어 사는 사람들이 셔먼이구나
Ah, speaking future is forbidden
Those who hide away, trading it for money, must be the Shermans
25.1
예기 없이 떠난 암스테르담에서 3일간 신들린 체험을 했다. 살면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이 하루에 서 너개씩 연속으로 터지니까, 놀랍기 보단 오히려 감각이 없어져서, 그저 신나게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라다니다, 야콥의 딸 미아에게 마침내 포옹과 볼뽀뽀를 받고는 영광스런 기분으로 일요일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암스테르담에서 나를 뱉은 Schipol 공항에서도, 내게는 시리기만 한 공항의 의미를 조금 뒤튼 반짝이고 신묘한 순간이 있었다.
베를린에 돌아와 자정이 넘어 침대에 누워서야, 모든 게 밀물 들듯 천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글만 썼다. 나흘간 아침 여덟 시 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5일 뒤 금요일 아침에 있는 국현 개인전 최종심사 프레젠테이션까지만 신을 모시기러 작정했다. 윤석열 체포 뉴스는 일부러 단 한장면도 보지 않았다. 스토킹 리포트를 도와주고있는 변호사 필립을 만나서는 부정적인 얘기들에 몸이 반응해, 제발 그만해 달라고 사정했건만 멈추지 않는 그의 말에 그만 대화 중에 잠에 들어버렸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또 동이 틀 때까지 글을 썼다. 그 와중에 마르텐과 함께 준에게 Funkhaus 이 곳 저 곳을 보여주며, DDR 건축의 회의실에서 전시 사운드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놀았다. 하루에 두 세 시간을 자고, 밥을 거의 못 먹었다. 배는 고픈데 몸이 받아주질 않았다.
잘 놀다왔냐는 가족 단톡방에 답을 할 수 없어 그냥 “나 신내림 받았어”라고 장난스럽게 썼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하.. 누나 진짜 신내림 받은거 아니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런데 뒤에서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못 살아!! 걔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애야!!!”
이야.. 세상에 이런 서포트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와.. 우리엄마 진짜 감동이다!!”
“그게 아니고!!”
고맙다고 했다. 당신 배 안에서 나를 꼬물꼬물 만들고 낳아 키운 엄마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애라고 외치다니. “이 응원 고이 간직해서 면접 잘 볼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면접 전 날인 목요일에는 한참 전에 예약해 둔 현대 발레를 보러가야 해서,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베를린 시립발레단Berlin Staatsballet에 숨가쁘게 달려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 도착 한 나를 펠릭스는 친절히 맞아줬다. 그 와중에 기운을 지키느라, 아무것도 묻지 말고, 오늘은 그냥 이야기 말자 부탁했다. 펠릭스는 그러려니 해줬다. 우리는 황홀했던 공연의 여운을 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하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탔고, 펠릭스는 먼저 내렸다.
지하철에서 내일 아침에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머리속으로 요리조리 굴려본다. 준비는 일전에 끝났다. 그러다 불현듯 마르텐에게 전화를 건다. “야, 잠깐 와 줘라. 리허설 할래. 나와 내 작품을 모르는 제 3자를 설득시킬 언어가 필요해. 준도 오라고 해줘.” “준은 피곤하다는데, 혼자 갈게.” “아냐! 와야 돼! 한국인도 있음 좋겠어.” 그리고는 크리스챤에게 전화를 건다. “크리스챤, 나 내일 아침에 중대한 프레젠테이션 있어. 밤에 갑자기 미안한데, 내 교수잖아. 크리틱 해 줘. 지금 당장.” 크리스챤은 으으.. 나 방금 바젤에서 돌아왔다고.. 라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세 명이 큰 비머를 갖춘 크리스챤의 집으로 모이고 있었다.
10시경, 근처에 거진 도착했는데, 갑자기 크리스에게 전화가 왔다. 팬텀 바 가자는 건가? 오늘 화요일 아닌데. “추수, 너 어디야?” 상기된 목소리다. “나? 베를린.” “잘 들어, 지금 야닉한테 SOS 문자가 왔는데, 전화가 안 돼. 장소는 Funkhaus야. 근데 난 바바리아에 있어! 어떡해야 돼! 난 왜 지금 바바리아에 있는거야!!”
이런..
“야닉 전여친 말로는 얼마전에 피랑 이상한 걸 토했대. 지금 당장 갈 수 있어? 근데 누가 Funkhaus 키를 가지고 있지? 아아.” 크리스는 완전히 패닉에 빠져있었다. “마르텐! 마르텐이 마스터키가 있어.” “마르텐 어딨어?” “마침 나한테 오고있어. 당장 갈게.” 나는 마르텐과 준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Funkhaus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황했지만 빠르게 경로를 확인한 후 엑셀을 밟았다. 크리스챤에게 다시 전화하여 친구가 피를 토하고 SOS를 보내서, 미안하지만 거기로 가야한다고 했다. 나는 집 앞에서 초조하게 차를 기다렸다.
5분 후 마르텐이 전화를 걸었다. “야닉 괜찮대. 핸드폰 고장이래.”
우리 셋은 내 발코니에서 담배를 물었다. 준이 가져온 얇은 에쎄 체인지. 둘은 춥다고 했지만 나는 식은땀에 젖어 줄담배를 태웠다. 처음 와 본 준에게 작업실 소개도 못 했다. “내가 고작 몇 분 늦어 걔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단 말야. 내 머리속에 죽어가는 야닉의 다양한 영상이 재생됐다고.” 나는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는 내게 야닉이 빌려준 사랑스런 스웨터를 입고있었다.
마르텐은 긴장을 없애는 천부적인 몇 마디로 내 언 몸을 한방에 녹였다. 우리는 곧 맥주를 따 웃고 떠들며 크리스챤 없이 리허설을 시작했다. 마르텐과 준은 음악을 하는 본인들이 어떤 크리틱을 줄 수 있겠느냐 망설였지만, 거의 첫 구절부터 이런 저런 코멘트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 파트는 역시나 설명이 더 필요 했고, 그들이 빼는게 좋겠다고 하는 부분들은 내 욕심이 덧붙인 혹 같은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가 힘들거라고 했던 서울박스 공간에 그들은 마술을 불어 넣었다.
준은 돌아갔다. 마르텐은 내일 아침 일찍 폴란드로 공연을 떠나야 하는데, 아랫집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잠을 설치니까 우리집에서 자도 되냐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둘 다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 잘 쉬자고.
그러고는 이 놈이 코를 골기 시작하는데.
너무 시끄러워 이불을 들고 작업실 쇼파로 나왔다. 눈은 또랑또랑 했다. 또 쏟아지는 영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며 지금 자면 4시간은 자겠네. 지금 자면 3시간은 자겠네. 두 시간은 자겠네. 그러다 밤을 꼬박 샜다. 기분이 산뜻하다. 원래는 잠들지 못하는 숱한 밤들에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먼 미래에서 보내는 옅은 빛들이 자꾸자꾸 새벽을 비췄다.
그러다 하늘이 밝아오기 직전의 칠흑같은 마지막 어둠에서, 나는 정말로 내 여신을 만나고야 만다.
아침, 작업실 소파에서 나를 발견한 마르텐은 줄곧 사과한다. “괜찮아. 나 누구 만났어.” 나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새벽에? 나갔다 왔어?” 또 웃기만 했다.
마르텐은 비행기를 타러 나가고, 승하님이 아홉시 경 도착했다. 촬영 준비를 부탁하고 명상을 했다.
10시. 나는 리허설 때와 같은 자리에 앉아, 어제와는 또 다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준비한 트리플 악셀을 연속으로 깔끔하게 돌았다. 질의응답 때는 여태껏 언어화 하지 않았던 가장 솔직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엄근진 했던 8명의 심사위원들은 빵빵 터졌다. “웃기잖아요, 인간으로 태어나 콘돔을 끼고 섹스를 한다는게!”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나는 승하님에게 방방뛰며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제가 너무 막 나갔나요?” “..그냥 추수님 같았어요.” “밤 꼴딱 새고 머리도 개판이고 완전 귀신꼴이네..” ..그냥 추수님 같애요.” 그 말에 왠지 안심했다.
우리는 인도카레를 먹으며 암스테르담 신내림 파트를 조금 공유했다. “팔자 진짜 세다. 이거 꼭 책으로 내세요.” 안 그래도 5일간 내리 써내려간 종이들이 침대와 소파를 가득 덮고 있다. 여행을 시작할 때 이번엔 글을 쓰지말자 맘을 먹고 종이를 안가져갔더니, 결국엔 읽으려 잔뜩 뽑아간 e-flux 비평문들 뒷장이 빼곡히 다 찼다. 바르셀로나 이야기는 아직 곱씹기를 시작도 못 했다.
원래도 쓰는 글에서 작은 파편들만 컴퓨터로 옮기곤 하지만.. 너무 방대해져 손을 대기가 어렵다. 다음 주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는 모든 다른 일들을 중지하고 정리와 신작에 심신을 바쳐야지.
“야닉, 좀 괜찮아 졌어?”
저녁 즈음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물은 안부에, 야닉은 보이스 메시지로 답했다.
“응?.. 내가 언제 안 좋았었어?”
나는 눈물 나게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했다. “네가 괜찮다니, 그럼 됐어!”
17.1
작가는 무료로 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시 초대시, 예산이 얼마인지 미리 밝히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지원금이 크든 작든 아예 없든, 명확히 밝히며 의사소통을 요청해야 작가와 팀도 진지하게 검토에 임할 수 있다.
초대된 전시의 의도를 읽고, 전시장의 성격을 살피고, 큐레이팅 방향을 공부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우리는 이슬만 먹고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Artists are not people who work for free.
There are still many invitations where the budget is not disclosed in advance.
Regardless of whether the budget is big, small, or non, it should be clearly communicated, then the artist and their team could seriously evaluate the proposal.
It takes significant time and energy to understand the exhibition’s intent, examine the nature of the venue, and review the curatorial direction.
We are not special beings who can survive on dew alone.
7.1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 하는게 전부다. 작품도 내 손을 떠나면 혼자 살아가듯이, 그걸 예술에서 먼저 배웠네. 누구도 그 이상을 할 수는 없다.
내게 여태 일어난 모든 기적을 기적이라 부르는 것도 오만이려나. 인간은 개중 가장 그렇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민감한 뉴런 덩이들이다. 우리의 몸과 뇌와 정신은 우리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 할 정도로 수 많은 것들을 느끼고 감각한다. 아주 오랫동안 쌓고 갈고 닦아온 많은 것들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는다. 색을 본다. 감촉을 만져보고 온도를 느낀다. 핥고 쳐보고 소리도 내면서 경계와 수용을 매 순간 결정짓는다.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남아 생태계를 이루고 살고있는 예민하고 처절하며 야생적인 동물이다. 아주 조금 멀리서 보면, 인간이란 동물이 밝히는 빛들은 또 한 덩이의 뉴런처럼 얽혀있다.
Putting my heart into every moment—that's everything. Just as a piece of art, once it leaves my hands, goes on to live on its own, I first learned this through art. When it comes to life, no one can do more than that.
Calling all the miracles that have happened to me thus far "miracles"—would that be arrogance? Humans, even those who seem the least sensitive among us, are bundles of neurons so finely tuned, they surpass imagination. Our bodies, brains, and minds perceive and sense far more than our conscious awareness can keep up with. We instinctively pick up the scents of countless things that have been built, refined, and accumulated over time. We see colors. We touch textures and feel temperatures. We taste, strike, and produce sounds, constantly drawing and redrawing the boundaries between rejection and acceptance.
Humans are sensitive, relentless, and untamed animals, surviving and thriving as part of Earth's ecosystem. Seen from a little distance, the lights that humans illuminate on the earth as a species intertwine like another vast network of neurons.
1.1
몇 년 전, 2026년에 애 낳겠다고 CV에 곤조있게 적어놨는데 이런, 올 해 임신해야 하네.
…뭐 실패 목록도 CV에 적을 수 있는거잖아?
Some years ago, I boldly wrote in my CV “Plan To Have A Baby, 2026.” Damn, means should be pregnant this year.
…Well, failures can go on a CV too, why not?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