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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멜랑콜리

추수

비디오 시리즈

2021

추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Aimy를 제작해달라는 Enterarts 회사의 제안을 받는다. 20대 초반의 긴 머리, 날씬한 체형에 순수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한, 소위 아이돌의 전형적인 외관을 닮아야 한다는 조건에, 그녀는 거절 의사를 밝힌다. 며칠 후, 추수는 팝 음악 씬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제작하는 대신, 집(미술관이나 SNS 플랫폼)에 돌아와서는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에이미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고, 이렇게 직업으로서의 인플루언서 모습을 한 에이미와,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미술관에서는 액티비스트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에이미가 탄생한다. 현재 인플루언서 에이미는 제페토와 인스타그램에서 수 만명의 팔로워를 이끌며 48곡이 넘는 음악의 저작권자로 등록되어있다. 한 편, 집에 돌아온 에이미는 자신의 인플루언서 활동 비디오를 리뷰(2021)하거나, 틴더(2021)로 다른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을 만나거나, 사이보그 선언문(2021)을 통해 사이보그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며 독일, 루마니아, 뉴욕의 미술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관객과 활동 영역을 가지고 있는 에이미의 정체성들이 앞으로 함께 어떤 세계관을 만들어 나갈지는 추수 자신도 궁금 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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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선언문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10:41

리뷰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40

에덴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2:28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40

우울한 해체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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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배신

2 framed prints, 841x 594 mm

사이보그 선언문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10:41

 

Text (EN) / Donna J. Haraway(1985), A Cyborg Manifesto, Socialist Review

Text (KR) / 도나 J. 해러웨이(1985), 사이보그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목소리 / TZUSOO

사운드 / Artur Sommerfeld

By means of Aimy Moon, a dually distinguished virtual influencer and virtual activist, "The Cyborg Manifesto (2021)" engages in a discourse surrounding a publication penned in 1985 by Donna J. Haraway. In an illuminating interview, TZUSOO expounds on the enduring relevance of Haraway's text in the context of our contemporary generation, amidst an epoch inundated with a deluge of virtual and digital imagery. Within this creation, the verbiage of the text finds voice through an imagined persona distinct from human, thereby bestowing a renewed vitality and persuasive resonance upon the historical verses of the Cyborg Manifesto.

소마 아트스페이스, 베를린, 독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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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는 "사이보그 선언문 (2021)"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이자 동시에 버추얼 액티비스트이기도 한 에이미 문(Aimy Moon)을 통해 1985년 발표된 도나 J. 헤러웨이의 텍스트를 낭독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헤러웨이의 텍스트가 그 어느 때보다도 디지털-가상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더욱 유효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작품 속에서 인간이 아닌 가상의 인물인 에이미를 통해 텍스트가 발화된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사이보그 선언문’에 다시금 생명력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가상인간 에이미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SNS에서 인공지능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전시 공간에서는 버추얼 액티비스트로 활동한다. (대중음악씬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에이미는 거추장스러운 가발과 불편한 의상을 벗고 자신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부유하고, 심지어는 분열하고 증식한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한 가상인간 에이미는 인간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부모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스스로를 사생아라 지칭한다. 그는 인간의 손을 빌려 생명력을 얻고 유지해 나가면서도 역설적으로 부모-인간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것을 선언한다. 에이미의 선언처럼, 사이보그는 젠더 이분법적인 상상력을 벗어나는 포스트 젠더 세계의 피조물이다. 작가의 언급대로 “여성도, 남성도, 인간도, 기계도 아닌, 인종적으로도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에이미는 빈약한 상상력으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 속 퀴어적 재생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부모보다 좋은 유전적 형질로 진화-재생산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처럼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에이미는 현실의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 던지고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될 것'을 선언한다.

​큐레이터 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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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40

목소리 | TZUSOO

사운드 | Artur Sommerfeld

리뷰 (2021)”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자신의 비디오를 에이미가 직접 리뷰하는 비디오다. “리뷰”를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에서 일차원적으로 소비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의 이미지에 대한 회의적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언급대로 “여성도, 남성도, 인간도, 기계도 아닌, 인종적으로도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에이미는, 빈약한 상상력으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 속 퀴어적 재생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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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소, 서울, 한국,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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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2021

비디오, 00:02:28

음악 / Aimy Moon (AI)

"에덴 (2021)"는 사이버네틱 에덴의 비전을 풀어내는 비디오다. 전통적인 에덴동산의 패러다임인 단호하게 이분화되는 남성과 여성, 선과 악, 신성과 세속성의 원형의 제약을 벗어난다. 20세기에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에덴의 초현실적인 표현을 디지털 세계에서 재해석 하여,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현실, 환상 혹은 환각, 시련과 알려지지 않은 사이보그들의 이상과 에덴의 비밀에 찰나의 빛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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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더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40

목소리 | TZUSOO

사운드 | Artur Sommerfeld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에이미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데이팅 앱 틴더(Tinder)로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

틴더에 등장하는 프로필(Lil Miquela, 오로지, Imma, etc.)들은 모두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다. "I'm a virtual girl," "interested in Japanese culture," "I am only one, I could be everyone," "Digital Character, Activist, Vegan" 등의 프로필 문구는 그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같은 채널을 통해 본인들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여주며, 각자의 아이덴티티와 존재론을 추정케 한다. 에이미는 취향에 따라 like 버튼과 dislike 버튼 사이에서 고민하고, 종종 코멘트를 던지며 하품하다가, 비인간으로서 처음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민권을 가지게 된 AI 로봇 Sophia의 "Can humans and machines escape together the sublime matrix of nature and Darwinian evolution?" 라는 질문을 빤히 바라보다 잠이 든다. 

"틴더 (2021)"는 디지털 세계가 노출하는 이미지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추수의 에이미 시리즈 중 하나이다. 1차원적으로 소비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의 다양한 면모를 비추며, 근미래에 모두에게 필수적 친구가 될 디지털 이미지들을 어떤 태도로 맞이해야 할지 준비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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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미술관, 안산, 한국,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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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해체

2021

비디오와 사운드, 00:05:16

목소리 | TZUSOO

사운드 | Artur Sommerfeld

"우울한 해체 (2021)"는 디지털 존재가 경험하는 상실과 슬픔의 본질에 대한 비디오다. 

 

게임 요소들, 아이콘과 디지털 상징등을 섬세하게 해체함으로써,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복잡한 감정을 미적으로 채널화한다. ‘우울’, ‘멜랑콜리’와 같은 용어들의 입력으로 제작된 AI 생성 음악이, 기계적 표현 방식의 이해를 정교하게 돕는다. 이렇게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이 디지털-슬픔에 대한 숙고적인 서사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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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배신

2021

2 framed prints, 841 x 594 mm

"에이미의 배신 (2021)"은 여성 이미지의 양극을 보여주는 두 점의 포스터 시리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성녀-창녀 이분법은, 문화와 예술, 문학 전반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성녀(찬미의 대상)와 창녀(멸시의 대상) 두 가지로 한정되어 소비되는 점을 이야기하는 문화비평 이론이다. “에이미의 배신”은 디지털 세계에서 조차 반복되는 성녀-창녀 이분법 현상을 비판하며, 한 쪽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여성 존재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강력한 신체 해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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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my's Melancholy is a video installation and essay about the exclusively virtual life of Aimy, a K-pop singer and a popular avatar who wants to reform its existence and take the first steps towards its practice as an activist. Inspired by Donna Haraway and her Cyborg Manifesto, Aimy questions its digital existence and embarks on an adventure that aims to seek freedom.

 

Starting from here,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at does it mean to have a virtual life?" determines the orientation of a political movement and an ideology that focuses on the destinies of lives lived by machines.

 

”The main trouble with cyborgs, of course, is that they are the illegitimate offspring of militarism and patriarchal capitalism, not to mention state socialism. But illegitimate offspring are often exceedingly unfaithful to their origins. Their fathers, after all, are inessential. (...)

Who cyborgs will be is a radical question; the answers are a matter of survival. (...) Cyborg unities are mon-strous and illegitimate; in our present political circumstances, we could

hardly hope for more potent myths for resistance and recoupling.”

 

Text Adrian Bojenoiu

     가장 충실한 모독

     급진주의자는 외부로부터 임명 받기를 기다리지 않고 실천한다. 급진성의 이데아는 결코 성취되는 법이 없지만 진정한 급진주의자, 즉 예술가는 쉬지 않고 선언한다. 예술가의 선언은 말을 앞세우는 행동으로 가늠되지 않는다. 그 선언은 기존의 목소리에 데시벨을 높이고자 자신의 존재를 소진시키는 일이 아니다. 다만 예술가는 작업 한다. 이는 효력의 가시성 차원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지난한 시간 그 자체이며, 심지어는 효과의 요체 또한 불분명한 불가지의 시간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믿음으로 실천의 구색을 갖추지만, 대개는 이내 허위의식에 발목 잡히곤 하는 곤란함이 시시각각 밀려드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급진성의 성취를 열망하는 장면을 고대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희망의 유일한 흥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가가 지향하는 예술 실천의 흥미로움에 있어, 추수에게는 최상급의 수식어를 붙여도 된다.

     순환이 예고된 나란한 허구
     추수의 세계는 총체적이며 분열적이다. 이 둘 사이에 우선순위는 없다. 심지어 총체성과 분열을 상반된 요소로 명명하는 것 자체가 오독일지 모른다. 예컨대 추수가 
창조한 에이미는 존재한다. 이때 추수는 ‘실제로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진짜 어머니’가 아니라는 모순을 갖는다. 한편으로 에이미가 추수의 일부일 수 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만, 추수가 에이미일 수 있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어떤 존재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부정(negation)의 의식적 전유’가 요청된다. 에이미는 순수하지 않지만 더러워지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필요)없다. 세계 안에 있는 그의 물리적 크기를 알 수 없다. ‘낮’에는 인공지능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문’으로 ‘일’한다. 이때의 일은 순수한 활동일 뿐 자본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노동이 아니다. 체액이 없고 배설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지 않지만 긴장했을 때 술을 마신 적1)은 있다. 체온이 없지만 물에 들어갔을 때 추위를 느낀 적은 있다2). 결코 늙지 않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염두에 두면 때때로 노스탤직하게
느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요컨대 에이미는 인간적인 것으로부터의 부정(negation)을 함의하면서도, 완전한 부정은 아니라는 점에서 경쾌한 혼란을 제공한다.

     혼란에 덧붙여 추수는 에이미의 장소를 비교적 선명하게 분할해두었다. 에이미 문은 가발을 쓰고, 발랄한 듯 수줍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신비로우면서도 어린 음성으로 노래한다. 그의 가창력은 전혀 의심스럽지 않고, 언제나 안전하다. 낙관적인 가사부터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후렴구까지 전형적인 K-Pop 음악으로서의 구성 또한 손색없다. 이렇듯 에이미 문은 여성 아이돌의 음악, 의상, 목소리까지 소위 부자연스러움의 총체인 ‘여성(female)-됨(being)’을 전용한다. 반면 ‘일’로부터 ‘퇴근’을 마친 멜랑콜릭한 액티비스트 에이미는 목소리부터 그 성별을 알아챌 수 없다. 명랑함은 애초에 없었던 것만 같고, 어딘가 모르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다. 민머리에 탈의 한 상반신의 오른쪽 젖꼭지에는 피어싱이 뚜렷하다. 장소의 시작과 끝이 모호하며 무한하고, 어딘가 우울한 공허의 상태 안에서 그저 지금만 있는 존재처럼 끝없이 부유한다.

     이 둘은 머무는 장소뿐만 아니라 태도, 인격, 관객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이는 둘의 커뮤니티-타임라인-가 완전하게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추수만이 이 둘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이자, 연결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다른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에이미 문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되는 이들, 에이미 문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미술관에서 에이미를 관람하는 이들 모두 ‘어디서든 물질이며, 불투명하기 때문에 유동적일 수 없는’ 인간3)이라는 점이다. 세계 안의 한시적인 덩어리인 인간은 에이미를 통해 연결된다. 누구나 에이미와 자기만의 관계를 맺고 의미를 가져갈 수 있다. 연결이 활성화될수록 추수가 구상하고 창작한 에이미는 그 자체로 자율성을 갖는다. 추수는 에이미를 탄생시켰지만, 에이미의 속내를 완전히 알아 챌 수 없다. 이 진실은 에이미를 급진적인 자율성의 영역으로 가속화한다. 이는 예술이 성취할만한 진정한 기쁨 중 하나다. 추수는 존재를 만들고, 증식시켜, 체계를 사유하는 방식을 순환시킨다. 쉽게 섞이는 법이 없는 가역적인 세계에서 체계를 순환시키는 일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놀라움이다.

     젠더 없음의 자유
     “사이보그는 이번에는 오이디푸스적 기획 없이, 유기체적 가족 모델을 따라 설계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에덴동산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고, 흙으로 빚은 것도 아니므로 흙(dust)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꿀 수도 없다.” -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집적회로 속 여성들을 위한 공통 언어라는 아이러니한 꿈>(1984) 중에서.

 

     오이디푸스적 기획이 없다면 젠더는 무슨 소용인가. 젠더는 사이보그에 반한다. 젠더는 통합하지 않고 분열한다. 젠더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모든 것’이란 지금 이름 지어진 그 모든 분류법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분류법을 적용하지 않기란 꽤나 곤란한 일인데, 존재는 그 자체로 과거를 가진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며, 그 존재를 바라보는 타자 역시 나름의 과거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거란 어떻게든 분류법을 소환해내고야 마는 불쾌하고 부정확한 것으로서, 예술가는 언제나 그에 구애 받지 않을 피조물을 지향한다. 그 지향점이 충분하게 성취될 때 피조물은 시대를 막론한 보편 그 자체로 살아있을 가능성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추수가 다루는 젠더는 젠더 구분에 반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것은 명명되기를 희망하며 투쟁을 통해 성취하는 자유가 아닌, 명명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큰 차원의 자유다. 이때의 포기는 현실을 외면하고 정신적인 안위의 세계로 떠나는 선택이 아닌,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용기다.
     이런 면에서 추수의 작업 전반은 자유의 상태를 시각문화로 은유하는 것을 넘어 자유 그 자체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는 개방적이며, 익명적이고, 불확실하다. 에덴동산은 선악과가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도덕과 윤리의 결집체다. 에덴동산을 욕망하는 기저에는 지금의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체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컨대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원죄를 뉘우쳐야 하며, 더는 죄를 짓지 않는 선택만을 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세계의 모든 폭력이 정당화된다. 고로 에덴동산은 진정한 자유를 약속해주는 땅이 아니라 거듭되는 배제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잠정적 보상이다. 추수의 세계는 에덴동산의 존재에 관한 고전적인 인식을 일부러 폐기한다. 추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에테르(ether)이며 정수(quintessence)’4)로서의 인물-사이보그들은 기존의 규범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등장하지 않고, 규범의 있음을 애초에 모름으로써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겪는 사회적/신체적 현실은 어떤 종류의 변형을 예고하는가? 그 변형은 예측 가능한가?

     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
     언젠가 추수는 ‘물리학적으로 봤을 때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유의지 없음은 물리학적 참 명제로 기술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입장에서 여전히 논쟁적이다. 게다가 개별의 선택이 최고 가치로 존중되는 예술의 분야에서 이러한 결정론적 토대는 쉽게 충돌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에 관한 추수의 판단과 그의 예술관 안에 등장하는 존재들의 자율성, 예술가 추수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나란해지는가? 결정론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선택이란 무엇이 될까? 그것이 어떤 모양을 지니건 간에 자유의지에 관한 낙관적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선택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정론은 인간을, 특히 예술가를 낙담시키는 가장 주요한 진실이지만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예술가의 선택은 그 진실을 수용/재창조하면서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관련해 도나 해러웨이는 아래의 도표5)를 통해 예언과도 같은 진단을 한 바 있다. 

* <종래의 안락한 위계적 지배로부터 무섭고 새로운 지배의 정보과학 네트워크로의 이행>에 관한 도나 해러    웨이의 도표 중 일부.

     거의 모든 것이 예측가능해지는 다가올 세계에서 예술가의 선택이란 어떤 종류의 독창성을 담보하게 될까? 머지않아 독창성은 고유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새로움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직관과 직감으로 구축된 미적 주관성이 과거의 유물처럼 되어버렸을 때, 독창성은 예측의 매커니즘에 균열을 내는 변수로 분류될까? 에이미의 노화와 변주된 에이미의 증식 /복제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에이미는 그의 ‘일’에 어떠한 외부적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결정론적 한계에 갇힌 인간에게 항구적인 깨달음을 제공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예술은 인간됨(being humans)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자유의지 없음의 상태를 획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까? 일련의 강력한 변모의 시기에 추수의 선택은 정신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메타의 메타의 메타의 메타로 고도화 되어간다.

     다시, 추수가 에이미와 함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몇 가지 단계로 들여다볼 법하다. 추수는 예술가다. 추수는 에이미를 탄생시켰다. 대중-대체로 동남아시아 10대 여성-의 사랑을 받는 프로듀셔이자 가수 에이미 문의 활동 이면에 버추얼 액티비스트 에이미가 나란하다. 액티비스트 에이미를 추수가 반추한다. 반추하지 않는 창작은 불가능하다. 추수의 예술 안에서 에이미는 파편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상징이다. 이 모든 활동은 추수의 예술로 범주화 되어 전시되고 유통된다. 과정이 심화될수록 추수의 예술은 에이미의 이중세계를 교차시킬 힘을 갖는다. 동시대 예술가의 가장 큰 강점은 과거의 예술이 어떤 지형에 있었는지 회고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한데, 지금-여기는 실시간으로 과거가 되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추수의 예술관은 수많은 과거의 예술가가 꿈꿔왔던 시스템 전복의 가장 급진적 모델인지도 모른다. 급진성과는 별개로 일련의 과정 안에서 추수는 꽤나 보수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보수성은 추수가 근본적으로 ‘에이미’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추수가 예술이 예술만의 일을 할 때 그 힘이 실현되리라는 것을 믿는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 안에서 이 모든 것은 예술의 역사를 경유하며, 동시에 예술의 역사로 포섭되는 실천이 된다. 여전히 ‘가상’의 존재로 보여주는 예술, 인간됨을 부정하는 예술은 일견 모독처럼 여겨지지만, 추수의 실천은 다분히 급진적이고 충분히 자율적이며 충실한 모독이라는 점에서 예고된 클래식6)이다.

1) 추수의 영상 작업 <The Review>(2021)에서 에이미의 진술에 의거.
2) 상동.
3)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집적회로 속 여성들을 위한 공통 언어라는 아이러니한 꿈>,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6.

4)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집적회로 속 여성들을 위한 공통 언어라는 아이러니한 꿈>,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6.
5)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지배의 정보과학>,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6.
6) 추수와의 인터뷰 중 그가 일전의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펄떡이는 정신만이 클래식이라는 일념’이라는 발언에 관해 질문했다. “펄떡이는 정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추수는 답했다. “예술의 정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에 수반되는 야수성을 지키려고 매일 싸운다. 외부에서 걸어온 싸움이 아닌 혼자서 하는 싸움이다. 옆에 동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빛이 없는 동굴에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무언가 발을 당기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계속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Project supported by: AFCN, Teatrul Național Marin Sorescu

Parteners: Revista ARTA, TVR,

***

Cultural project co-financed by the National Cultural Fund Administration. The project does not necessarily represent the position of the Administration of the National Cultural Fund. The AFCN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the project or the manner in which the results of the project may be used. These are entirely the responsibility of the funding recip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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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I. Cuza street, Nr. 11, inside the “Marin Sorescu” National Theater, Crai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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